육아
부모가 건네는 '사소한' 한마디 18.1.18 오전 10:04

부모가 건네는 '사소한' 한마디

 

우리는 보통 우리에게 부여된 혹은 기대되는 역할에 맞게 행동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병원에 입원해서 환자복으로 갈아입는 순간 우리는 ‘진짜’ 환자가 됩니다. 사복을 입었을 때와는 달리 환자복을 입으면 자연스럽게 걷는 것도 더 기운 없어지고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할 것만 같죠. 하기야 환자의 과제는 질병으로부터의 회복이니 신체의 재활이 아니라면 딱히 할 것도 없습니다. 환자복을 입는 순간 우리는 환자로 확인된 것이고 암묵적으로 병원의 지시를 따르겠다는 서약을 한 것이 되니까요. 유니폼을 입히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런 효과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유니폼을 입지는 않아도 유사한 현상을 자주 관찰할 수 있는 곳이 가정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각자 상대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있습니다. 엄마가 음식을 해야 제대로 맛이 나고 아빠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다가 늦게 귀가하는 것이 전통적인 성 역할이었다면, 이제는 생물학적 성별의 차이보다는 능력 및 여건에 따라 역할이 달라지는 방향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어른들이야 그렇다 쳐도 어린 자녀들은 자기의 역할을 잘 모르기 때문에 주변의 어른들이 알려주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녀가 어릴수록 부모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그래서 부모가 자녀들에게 전달하는 언어적 및 비언어적 메시지로부터 아이들의 정체성이 형성되고, 아이들은 그에 맞추어 행동하면서 자신을 확인하고 인식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아이 앞에서 엄마가 “우리 애는 마음이 여리고 자신감이 부족해요”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하는데, “엄마, 나 여리지 않아요.”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는 아마 별로 없을 것입니다. ‘마음이 여리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고 대략 혹은 잘못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런 경우 엄마의 여리다는 공개선언에 대한 아이의 비언어적인 항변은 동생이나 친구를 멋지게 걷어차는 것일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 애는 수줍음이 많아서 낯선 곳을 싫어해요.”라는 형식의 말들은 “나는 수줍음이 많아서 낯선 곳을 싫어할 수밖에 없다.”라는 말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약간 수줍음을 타던 아이는 낯선 곳을 피하게 되고, 그 결과 낯선 곳에 대한 경험이 줄어들면서 수줍음이 더 커질 수도 있습니다. 결국, 엄마가 무심결에 말한 “우리 애는 수줍음이 많다.”는 말이 점점 더 확실한 사실이 될 수 있다는 의미죠. 말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이렇듯 외부에서 주입된 견해가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으며, 특히, 상대가 어릴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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